안철수 서울대 융합대학원장 ‘중앙비즈니스 포럼’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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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4,127회 작성일 11-07-12 11:09본문
(중앙일보)
안철수(49)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세계적인 천재도 10개 아이디어 중 한 개만 성공시키는데, 우리는 천재 한 명이 아이디어 하나 냈다가 실패하면 매장당한다”고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우리 사회는 실패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싹수 있는 사회일수록 리스크 테이킹(위험 감수)을 하지만 우리는 똑똑한 사람들이 이를 피한다”고 꼬집었다.
지난달 27일 서울 순화동 중앙일보 인력개발원에서 열린 ‘중앙비즈니스(JB) 포럼’에서다. 포럼은 중앙일보 산업부 기자들의 학술모임이다. 안 원장은 또 “이대로 가다간 삼성 같은 대기업도 망한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안 원장의 ‘대기업 패망론’은 전 세계에 불고 있는 정보기술(IT)기업 창업열풍에서 왜 한국만 비켜 있는지를 설명하는 도중 나왔다.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문화’가 한국이 경쟁국보다 먼저 치고 나가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는 데 발목을 잡고 있으며 삼성 같은 대기업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요즘 한국이 IT 창업 열풍과 괴리돼 있는 이유는.
“네 가지다. ▶창업자의 실력 부족 ▶열악한 창업 인프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 관행 ▶좀비(죽지 않고 살아있는 시체) 이코노미다(그는 좀비 이코노미 설명에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한국에서는 벤처투자가 부진하다 보니 대표이사가 연대보증으로 은행 빚을 얻어 사업을 시작하고, 사업이 부진해도 빚 때문에 접지 않는다. 그 대신 덤핑을 하고, 정부의 눈먼 돈을 지원받아 가며 일종의 ‘좀비 기업’이 돼 생명을 연명해 간다는 것이다).
대기업들의 행태도 좀비 이코노미에 한몫한다. 괜찮은 벤처가 있으면 인수합병(M&A)을 해야 벤처투자자가 돈을 회수할 수 있는데, 그냥 그 기업과 독점계약을 맺고 소위 ‘삼성 동물원’ ‘LG동물원’ 식으로 동물원에 가두니까 벤처투자가 일어나지 않는다.”
- 그래도 안 원장 창업 시절(안철수연구소 창업시점이 1995년)보다 여건이 좋은 것 아닌가.
“사회 인센티브 시스템이 굉장히 나빠졌다. 젊은이들이 98년 외환위기 전에는 공대에 가려 했는데, 이젠 완전히 돌아섰다. 요즘은 똑똑한 사람들이 리스크를 더 감수하지 않고 안전지향적으로 간다. 50년 전에 우린 꼴찌에서 3등이었다. 그때 우리 생존방식은 가진 게 없으니 남들이 해놓은 거 열심히 쫓아가서 싹수가 있으면 올인했다. 그래서 성공했다.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다. 중국이 우리보다 빠르기 때문에 이젠 퍼스트 무버가 돼야 한다.”
-대기업이 퍼스트 무버가 되려면.
“기업문화를 바꿔야 하는데 지금으로선 불가능하다. 기업 생태계를 만들어서 벤처기업이 다양한 실험을 하게 하고, 그중에서 성공한 벤처를 인수하면 삼성전자도 혁신적인 기업이 된다. 대기업은 장기적인 생존을 위해 ‘동물원’을 만들지 않는 게 맞다.”
-교수로서 무엇을 가르치나.
“세상이 안 바뀌는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친다. 그래서 창업을 권한다. KAIST 교수였을 때 한 학기당 세 명꼴로 창업했다. 교수가 돼서 제일 좋은 게 사람을 바꿀 수 있어서다.”
-창업에서 성공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좋은 사람이 모여서, 좋은 제품을 만들고, 점진적으로 실행하는 것이다. 혼자서 창업하기보다 두 명 이상이 창업하는 것이 성공확률이 훨씬 높다. 2~4명이 제일 좋다. 성공확률을 높이려면 창업자들의 만장일치가 좋은데, 사회학적으로 보면 5명부터는 그게 잘 안 된다.”
-안 원장 자신은 창업 초기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냈나.
“어느 날, 친구들은 다들 교수 하는데 나는 뭐 하고 있나 싶더라. 그런데 헤어나오는 노하우가 생겼다. 동기동창과 비교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위를 쳐다보면 힘들지만 아래를 보면 내가 회사를 만들어 매출도 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제일 어려웠던 점은.
“사업 초기 직원들 월급 줄 길이 없어 은행 직원들에게 싹싹 빌어서 어음 깡(할인)을 해 마련했다. 그때 경험 때문인지 지금도 월 초만 되면 괜히 불안하다.”
-어떤 인재를 선호하나.
“사람을 뽑을 때 딱 하나만 본다. ‘나는 틀릴 수 있다(I may be wrong)’고 말하는 사람이 좋다. 다른 사항은 볼 필요도 없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자신감을 갖고 있고, 다른 사람과 합의를 이뤄낼 수 있다. 실패 확률을 10분의 1로 낮출 수 있는 사람이다.”
-한국 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나.
“지금 한국 대학들은 교육기관이 아니라 공부기관이다. 목표가 연구성과에 집약돼 있다. 좋은 대학일수록 학생들을 방목한다. 학생 교육에 신경을 많이 쓰는 교수는 바보가 되고 있다. 대학이 교육기관으로 자리 잡아야 희망이 있다. 얼마 전 KAIST의 자살 사태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KAIST라는 조그만 창을 통해 터진 거다. 자살이 멈춘 것은 가족·친지들이 안부 묻고 관심 보이니까 그런 거다. 실질적인 조치가 없었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않고 학교에만 맡겨둬선 안 된다.”
-정치참여 제의를 많이 받는다. 세상을 바꾸려면 참여해서 해야지 피하는 것은 비겁한 행동 아닌가.
“정치는 체질에 안 맞는다. 내겐 권력 욕심이 없다.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쾌감이 아니고 짐이다. 괜찮은 분들이 (정치판에) 가서 그냥 나온다. 혼자서는 절대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함께 바꿀 수 있으면 제일 좋은데 그런 때가 올까.”
- 그냥 메시지만 던지겠다는 건가.
“메시지도 던지지만, (그냥 메시지만 던지고 있자니) 화도 조금씩 나고 있다. 나 자신을 보면 정치인과 안 맞는 게 확실한데, 현실을 보고 있자니 점점 화가 난다.”
정리=권희진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안철수(49)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세계적인 천재도 10개 아이디어 중 한 개만 성공시키는데, 우리는 천재 한 명이 아이디어 하나 냈다가 실패하면 매장당한다”고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우리 사회는 실패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싹수 있는 사회일수록 리스크 테이킹(위험 감수)을 하지만 우리는 똑똑한 사람들이 이를 피한다”고 꼬집었다.
지난달 27일 서울 순화동 중앙일보 인력개발원에서 열린 ‘중앙비즈니스(JB) 포럼’에서다. 포럼은 중앙일보 산업부 기자들의 학술모임이다. 안 원장은 또 “이대로 가다간 삼성 같은 대기업도 망한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안 원장의 ‘대기업 패망론’은 전 세계에 불고 있는 정보기술(IT)기업 창업열풍에서 왜 한국만 비켜 있는지를 설명하는 도중 나왔다.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문화’가 한국이 경쟁국보다 먼저 치고 나가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는 데 발목을 잡고 있으며 삼성 같은 대기업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요즘 한국이 IT 창업 열풍과 괴리돼 있는 이유는.
“네 가지다. ▶창업자의 실력 부족 ▶열악한 창업 인프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 관행 ▶좀비(죽지 않고 살아있는 시체) 이코노미다(그는 좀비 이코노미 설명에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한국에서는 벤처투자가 부진하다 보니 대표이사가 연대보증으로 은행 빚을 얻어 사업을 시작하고, 사업이 부진해도 빚 때문에 접지 않는다. 그 대신 덤핑을 하고, 정부의 눈먼 돈을 지원받아 가며 일종의 ‘좀비 기업’이 돼 생명을 연명해 간다는 것이다).
대기업들의 행태도 좀비 이코노미에 한몫한다. 괜찮은 벤처가 있으면 인수합병(M&A)을 해야 벤처투자자가 돈을 회수할 수 있는데, 그냥 그 기업과 독점계약을 맺고 소위 ‘삼성 동물원’ ‘LG동물원’ 식으로 동물원에 가두니까 벤처투자가 일어나지 않는다.”
- 그래도 안 원장 창업 시절(안철수연구소 창업시점이 1995년)보다 여건이 좋은 것 아닌가.
“사회 인센티브 시스템이 굉장히 나빠졌다. 젊은이들이 98년 외환위기 전에는 공대에 가려 했는데, 이젠 완전히 돌아섰다. 요즘은 똑똑한 사람들이 리스크를 더 감수하지 않고 안전지향적으로 간다. 50년 전에 우린 꼴찌에서 3등이었다. 그때 우리 생존방식은 가진 게 없으니 남들이 해놓은 거 열심히 쫓아가서 싹수가 있으면 올인했다. 그래서 성공했다.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다. 중국이 우리보다 빠르기 때문에 이젠 퍼스트 무버가 돼야 한다.”
-대기업이 퍼스트 무버가 되려면.
“기업문화를 바꿔야 하는데 지금으로선 불가능하다. 기업 생태계를 만들어서 벤처기업이 다양한 실험을 하게 하고, 그중에서 성공한 벤처를 인수하면 삼성전자도 혁신적인 기업이 된다. 대기업은 장기적인 생존을 위해 ‘동물원’을 만들지 않는 게 맞다.”
-교수로서 무엇을 가르치나.
“세상이 안 바뀌는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친다. 그래서 창업을 권한다. KAIST 교수였을 때 한 학기당 세 명꼴로 창업했다. 교수가 돼서 제일 좋은 게 사람을 바꿀 수 있어서다.”
-창업에서 성공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좋은 사람이 모여서, 좋은 제품을 만들고, 점진적으로 실행하는 것이다. 혼자서 창업하기보다 두 명 이상이 창업하는 것이 성공확률이 훨씬 높다. 2~4명이 제일 좋다. 성공확률을 높이려면 창업자들의 만장일치가 좋은데, 사회학적으로 보면 5명부터는 그게 잘 안 된다.”
-안 원장 자신은 창업 초기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냈나.
“어느 날, 친구들은 다들 교수 하는데 나는 뭐 하고 있나 싶더라. 그런데 헤어나오는 노하우가 생겼다. 동기동창과 비교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위를 쳐다보면 힘들지만 아래를 보면 내가 회사를 만들어 매출도 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제일 어려웠던 점은.
“사업 초기 직원들 월급 줄 길이 없어 은행 직원들에게 싹싹 빌어서 어음 깡(할인)을 해 마련했다. 그때 경험 때문인지 지금도 월 초만 되면 괜히 불안하다.”
-어떤 인재를 선호하나.
“사람을 뽑을 때 딱 하나만 본다. ‘나는 틀릴 수 있다(I may be wrong)’고 말하는 사람이 좋다. 다른 사항은 볼 필요도 없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자신감을 갖고 있고, 다른 사람과 합의를 이뤄낼 수 있다. 실패 확률을 10분의 1로 낮출 수 있는 사람이다.”
-한국 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나.
“지금 한국 대학들은 교육기관이 아니라 공부기관이다. 목표가 연구성과에 집약돼 있다. 좋은 대학일수록 학생들을 방목한다. 학생 교육에 신경을 많이 쓰는 교수는 바보가 되고 있다. 대학이 교육기관으로 자리 잡아야 희망이 있다. 얼마 전 KAIST의 자살 사태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KAIST라는 조그만 창을 통해 터진 거다. 자살이 멈춘 것은 가족·친지들이 안부 묻고 관심 보이니까 그런 거다. 실질적인 조치가 없었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않고 학교에만 맡겨둬선 안 된다.”
-정치참여 제의를 많이 받는다. 세상을 바꾸려면 참여해서 해야지 피하는 것은 비겁한 행동 아닌가.
“정치는 체질에 안 맞는다. 내겐 권력 욕심이 없다.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쾌감이 아니고 짐이다. 괜찮은 분들이 (정치판에) 가서 그냥 나온다. 혼자서는 절대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함께 바꿀 수 있으면 제일 좋은데 그런 때가 올까.”
- 그냥 메시지만 던지겠다는 건가.
“메시지도 던지지만, (그냥 메시지만 던지고 있자니) 화도 조금씩 나고 있다. 나 자신을 보면 정치인과 안 맞는 게 확실한데, 현실을 보고 있자니 점점 화가 난다.”
정리=권희진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